이탈리아發 ‘2차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김종학 기자

입력 2018-11-26 09:26  

이탈리아 사태에 EU 뿐아니라 IMF 직접 나선 이유


20세기 초 옛 유럽의 영광을 되찾고자 자유사상가에 의해 구상된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이 이탈리아 예산안 사태를 계기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이탈리아는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이다. 이탈리아 사태를 계기로 유럽위기가 재연되면 위기의 성격과 범위 면에서 7년 전 유럽 재정위기와 달리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 7년전 유럽 재정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하나는 유럽위기가 특정 회원국의 재정문제에서 비롯됐으나 이탈리아 사태는 정치적 포퓰리즘에 기인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또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위기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금융의 본래 기능을 감안할 때 이탈리아 예산안이 조속한 시일 안에 재조정되지 않으면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이탈리아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위기극복 주체나 해결방안에 있어서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위기극복 주체가 교체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7년 전 개별 회원국의 재정위기는 통합에 따른 이점이 많았던 프랑스와 독일이 위기극복의 책임을 맡았으나 이번에는 EU가 직접 나섰다.
또 눈에 띄는 변화는 위기의 범위가 글로벌 성격을 띠는 만큼 국제 금융시장 안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구제금융 신청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신흥국 금융위기와 이탈리아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국채 발행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탈리아 사태가 발생한 직후 EU와 IMF가 직접 나선 것은 회원국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정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진단지표가 자주 활용되는데, 이 기준을 따르면 단기투기성 자금의 이탈 여부는 △자산인플레 정도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 등으로 예상할 수 있다. 중장기 위기진단지표는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 △국내저축능력이다.
이 가운데 단기 위기진단지표가 악화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에 곧바로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민간부문의 저축률과 재정수지로 표현되는 국내저축능력이 더 중시된다. 골드스타안의 위기진단지표를 적용해 유로랜드 19개 회원국의 위기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면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회원국들에서 위기 가능성이 높게 나온다. 특히 유럽재정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것이 EU원국들의 위기대응능력을 급속히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EU와 IMF가 유럽위기 극복에 나선다면 다양한 해결책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이탈리아 사태만 하더라도 기존의 긴축안과 구제금융안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ECB가 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거나 지급보증 방안과 IMF도 자본 부족국에게 지급하는 예비 신용공여도 가능해 진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이탈리아가 재정 긴축안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스 등 위기가 발생하면 부채감축과 경기회복 등 자력으로 구제에 성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원론적인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처럼 당장 엄청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국채 가격이 떨어진다면 실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긴축에 대한 국민의 저항도 예상된다.
다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가 유동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 통상적으로 취하는 예비적 신용공여다. 조건부로 예비적 신용공여 라인을 만들면 이탈리아가 한숨 돌릴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 충분한 규모가 아니면 투자자 불안을 더 촉발시킬 가능성도 높은 방안이다.
이탈리아가 재정 긴축안 집행에 차질을 빚게 되거나 자구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는 것도 쉽게 접근 가능한 방안이다.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면 신용을 회복할 때까지 3년 정도 채권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관건은 구제금융 규모다. 유럽안정기금이 추가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한 이탈리아의 부실채무 규모가 워낙 커 구제금융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공감을 얻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U가 직접 이탈리아 부채에 대해 무제한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도 일부 유럽 국가가 주장하고 있다. EU가 이탈리아에서 발행되는 모든 국채를 매입하거나 이탈리아에 저리대출을 시행하는 등 위기대응 기능을 극대화하자는 목적에서다. 현실적으로 유럽안정기금과 IMF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제시되고 있으나 독일과 프랑스가 EU 근간이 되는 리스본 조약에 위배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 유로화 가치설정 등 EU 내부문제 근본적 재검토 필요
최근 들어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하더라도 유럽위기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 안정차원에서 자본 편중국인 중국과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위기극복에 모두가 동참하는 ’프로 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 가치설정, 재정통합 결여 등 통합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유로 회원국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단일환율 적용으로 갈수록 심화돼 왔던 역내 회원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제다. 이론상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함으로써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유로 랜드는 환율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회원국의 대외불균형이 가격변수의 경고를 받을 수 없어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 통화정책과 개별 회원국별 재정정책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어 정책운용의 조화(policy mix)가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EMU는 단일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단일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재정통합은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역내 회원국 간 재정의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EMU는 ‘역내 단일통화정책―개별 사정을 고려한 국가별 독립적 재정정책’ 체제로 운영돼 왔다.
재정 통합이 어려운 EMU의 입장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핵심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한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수위가 미온적 조치에 그친 관용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위반에 대한 최종 벌칙은 벌금부과이며 그마저도 실행에 옮긴 사례가 전무하다. 이처럼 제재조치가 강력하지 못한 것은 제재를 결의하는 주체가 자신들도 언젠가는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다른 회원국을 강하게 제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회원국 국가부도 등 EMU 체제를 동요시킬만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유럽재정위기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비상대책 부재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EMU 체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이다. EU 조약상 회원국 자격을 강제로 박탈할 수는 없고 회원국의 자발적 판단에 의해 탈퇴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 유로화표시 대외부채의 자국통화 재산정, 국가신인도 하락에 따른 자금유출 등 단기적인 부작용이 커서 이 마져도 가능성이 낮다.
이밖에 EU 회원국 확대의 실익 논쟁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강력한 유럽’을 만든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회원국을 확대하고 경제체질이 허약한 국가들도 유로지역에 포함시키는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2001년 EMU 가입당시 그리스는 조세기반이 되지 않는 불법고용, 매춘 등 지하경제를 GDP에 포함시킨 데다 재정적자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것이 유럽 재정위기를 가져왔다.


◇ 유럽 재정위기 전개 4가지 시나리오
이상과 같은 근본적인 과제를 풀어가는 모습에 따라 향후 유럽재정위기는 ①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②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bonds of solidarity) ③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the collapse) ④유럽통합 질서회복(resurgence) 등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현 체제 유지`는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 없이 중장기적으로 위기관리체제를 강화하면서 미비점을 보완하는 선에 그치는 시나리오다. `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는 유럽 재정위기로 붕괴조짐을 보이는 유럽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유로본드(E-bond) 도입, 유럽통화기금(EMF) 설립, 재정동맹 보완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나리오다.
반면 `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는 유럽재정위기 회원국이 독자통화 도입을 위해 혹은 국내외 정치적 압력에 의해 유로통합을 탈퇴하고 잇달아 경제규모가 큰 회원국이 탈퇴하는 시나리오다. 가장 현실성이 높은 ‘질서회복`는 특별한 조치 없이 주변국의 경쟁력 회복과 재정개선 등으로 역내 회원국간 불균형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유럽통합이 재정위기 이전 상황을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탈리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극한 상황에서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던진 말 한 마디가 먼 훗날 제대로 평가받으면서 `지동설(heliocentric theory)‘이 확고해 졌다. 이탈리아 사태로 유럽위기가 끝이 보이질 않겠지만 그 속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위기극복의 싹을 경제주체들이 읽어야 나중에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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