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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별세` 시한부 선고 이후 55년 생존한 그가 남긴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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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14 14:59  

`스티븐 호킹 별세` 시한부 선고 이후 55년 생존한 그가 남긴 업적


별세한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죽음의 공포와 장애를 극복한 아이콘이었다.
14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55년 동안이나 시한부 인상을 살면서 누구보다 찬란한 연구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는 1963년 당시 21세의 나이로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그가 몇 년 뒤에는 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암담한 말을 비웃듯 올해 1월 8일 76번째 생일까지 55년을 생존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이상하게도 호킹 박사의 학문적 성과는 일취월장이었고 곧 지구촌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구원과 교수를 거치며 뛰어난 연구성과를 쏟아냈고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를 지냈다.
이 보직은 1663년 전설적인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맡은 적이 있는 만큼 호킹 박사는 전설의 계보를 잇는 걸물로 거론됐다.
호킹 박사는 눈부신 학문적 성취를 써가는 중에 건강 악화에 신음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대가 2009년 "호킹 박사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며 "병원에서 검사받고 있다"고 밝히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많은 이들이 호킹 박사가 이제는 생을 마무리할 때가 됐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그는 이 위기도 극복해냈다.
호킹 박사가 거의 온몸이 굳어버린 심각한 장애를 안고도 극복과 성취를 되풀이할 수 있었던 데는 보조공학의 역할이 컸다.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안면에 부착된 센서로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고 이를 목소리로 바꾸는 방식으로 대화했다.
이런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연구를 수행하고 글을 쓰며 강연을 할 수 있었다.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대 응용수학·이론물리학 연구소장을 맡아왔다.
그는 곧 죽을 것 같아 더 열심히 살았노라고 2006년 자신의 질환과 장애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호킹 박사는 "나는 일찍 죽을 것이라는 예상 속에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살았다"면서 "그래서 시간은 나에게 언제나 귀중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지론도 밝혔다.
그런 신념에 걸맞게 호킹 박사는 최근까지도 노령에도 부지런한 일상을 보냈다.
지난해 존립이 위태로운 자선버스 서비스를 유지하는 지역 캠페인에 참여했고 슈퍼컴퓨터로 우주의 기원을 찾는 COSMOS 연구진도 도왔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의 민영화를 막기 위해 제러미 헌트 영국 보건장관을 상대로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회에도 왕성히 참여했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주리  기자

 yuffie5@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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